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 '스터디 데이즈' 주제 발표 세션 1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에서는 이사회와 함께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스터디 데이즈’에서는 “초연결 시대에 고립된 개인, 가짜 뉴스와 신뢰의 위기, 우리 삶의 터전, 지구 지키기” 등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3일간 이어졌으며, ‘국제 언론인 포럼’, ‘국제 청년 포럼’도 열렸다. 이 세션들을 통해 공유된 이야기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 편집자 주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 ‘ 이튿날인 16일부터 3일간 진행된 스터디 데이즈는 “디지털 세상의 평화”를 주제로 세계 언론인, 학자, 성직자, 수도자들이 경험과 지식, 안목을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주제별 세션은 기조연설, 주제 발표, 토론으로 진행됐다.

첫 세션은 “초연결 시대에 고립된 개인”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으며, 교황청 홍보부 장관 파울로 루피니 박사가 기조연설을, 안토니 러 덕 신부(타이), 테레시아 와무유 와치라 수녀(케냐), 나타샤 코베카 박사(바티칸), 파울로 그라나타 박사(캐나다) 등이 발표를 맡았다.

파울로 루피니 장관. (사진 제공 = 시그니스)
파울로 루피니 장관. (사진 제공 = 시그니스)

“이토록 동시에 초연결된 시대에 어떻게 이토록 혼자일 수 있는가?”

기조연설을 맞은 파울로 루피니 장관은 2018년부터 교황청 홍보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루피니 장관은 먼저 오늘날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기술 발전과 그로 인한 초연결 상황에 대해 “부정하거나 과대펑가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다만 그 기술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인간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 인간 창의성의 결과물이며 생각과 지식을 연결하는 인간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기술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며, 기술의 근간은 인류와 자연의 헤아릴 수 없는 가능성, 세계 발전을 위한 인간의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에 반대되는 견해입니다. 인간의 노력, 예술적이고 과학적이며 기술적 창의력은 신성한 특성이며 기술은 우리 안에 있는 신의 숨결이 만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인식하고 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피니 장관은 기술이 신이 인간에게 준 여러 능력과 가능성이 만들어 낸 산물임을 인정하면서도, 다만 그것이 신과 동등하다거나 동등해질 수 있다는 사고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 만남이라는 기적, 창의력의 발산, 감사함을 부르는 사랑, 미래의 비전 등”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술을 넘어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통은 없고 연결만 존재하는 경우, 현실의 본질은 없고 대체하는 것만 있을 때, 초연결된 동시에 고립된 상황....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그는 이런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술을 진정으로 인간성 실현의 도구로 쓰기 위해 잊어서는 안 될 “함께함, 소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오늘날 단지 ‘연결’된 것에서 부족한 그 무엇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인지 함께 성찰하자고 초대했다.

그는 “오늘날 초연결의 상태가 평화의 문화를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영혼의 연결성을 복구해 줄 해답”은 “함께함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함께함의 진정한 가치를 되돌리고, 진정한 대화의 고유성을 복구하며, 연약한 환상이 아닌 과정의 구체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해답은 (함께하는) 우리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이라는 도전 과제에 대응하는 것은 그것을 우상으로도, 악으로도 여기지 않는 것이며, 기술의 임무가 인간성 회복은 아니지만 기술이 인간성을 말살시킨다고 믿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이란 절대적 연약함에 근거합니다. 연약함은 사랑을 주고, 받고 나를 내주어야 하는 우리의 본성이고 의사소통의 뿌리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평화를 위해 필요한 근간. 단순 연결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자아도취나 이기심에 사로잡히면서도 우리는 기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며,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지식과 관계를 갈망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루피니 장관은 “확실한 것은 진실과 현실에 뿌리 두지 않은 초연결성은 해롭다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측정, 판단하되 삶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말하며,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립과 외로움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저 너머, 현대 사회의 저 너머에는 우리의 불행이 없을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출발점”

루피니 장관은 “현재를 넘어선, 저 너머.... 그것의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의 인간됨을 만들어 주는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나를 넘어서는 ‘저 너머’는 한정 지을 수 없고, 우리를 서로, 또 하느님과 하나로 만들어 주는 것을 재발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저 너머를 고민하면 한계를 만나게 되지만 그 한계를 존중하고 인식해야 한다. 잠시 멈추고 그동안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 왔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지금까지 우리는 세상이 우리의 소유물인 것처럼 착취해 왔고 철저히 혼자였다. 그 모순이 악순환되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저 너머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지금과 여기를 초월하고 기술과 시장, 경제, 수치, 실용을 초월하고 현재 시대적 전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저 너머를 바라보기 위해 선지자, 예언자적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놓치는 것은 뉴스가 아닙니다. 더 깊고 더 큰 정보를 만드는 만남, 그 속에서의 진실한 관계입니다. 우리는 섬기고 신뢰하는 생태계에서 진실을 교감하고 공동체를 만들며, 모든 매체 간 구분을 통합해야 합니다.”

“진복팔단에서 예수님이 말했던 역설적이고 놀라운 발언.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한 이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은, 관계나 의사소통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은 놀람과 만남의 연속이며, 놀라움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태도가 아니기에 가능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첨예한 갈등과 고통에도 회복해야 할 선함이 무엇인지 볼 줄 알며, 소통이라는 관계를 끊임없이 추구합니다. 또 올바른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구속되지 않고, 값싼 행복을 파는 사람들의 거짓 약속을 쫓지 않습니다. 이것이 훌륭한 소통이자 저널리즘의 과제입니다.”

루피니 장관은 “우리는 사회적 결속을 위해 노력하고, 다리를 만들며 벽을 허무는 매체가 필요하고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면서, “만약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친교를 형성하고 보여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매체들은 세상을 모방할 뿐 또 다른 바벨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은 어쩌면 현재 세상을 거스르는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어진 발표 내용 요약이다. 

안토니 러 덕 신부. (사진 제공 = 시그니스)<br>
안토니 러 덕 신부. (사진 제공 = 시그니스)

발표 1. 안토니 러 덕 신부

새로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구축은 현재와 미래 교회의 사목적 소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회가 도전받는 새로운 소통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피상적이며, 상징적이고 인위적인 관계만이 이뤄지는 사회적 단절, 공동체가 사라지고 종교적 콘텐츠만 범람하는 종교적 단절과 양극화, 정치적 참여가 변화되고 정보도 과부하 되며 허위 정보나 악용된 정보가 확산하는 정치적 단절, 삶을 공유하는 기술과 자본이 아니라 공유하기 위한 삶이 되는 경제적 단절, 배경으로 전락한 환경과 자연으로부터의 환경적 단절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복음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을 이용하되, 핵심과 본질에 집중하며, 말하기보다는 듣는 통로로서 인터넷을 활용해야 합니다. 또한 소외계층과 젊은이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합니다.

테레시아 와무유 와치라 수녀. (사진 제공 = 시그니스)<br>
테레시아 와무유 와치라 수녀. (사진 제공 = 시그니스)

발표 2. 테레시아 와무유 와치라 수녀

초연결성은 현대 사회의 큰 특성이지만 연결과 동시에 단절시키는 역설적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결성으로 우리의 정신은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특정한 사회적 체계로 징집시키는 ‘식민지화’될 수 있습니다. 고립과 소외가 그 특성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상 공간에서 우리의 자아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 교회는 현실의 문제들을 어떻게 재복음화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디지털 세계의 평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찾는 여정은 우리를 가두는 소통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유로운 친교를 보호하는 데 있다.”

나타샤 고베카 박사. (사진 제공 = 시그니스)<br>
나타샤 고베카 박사. (사진 제공 = 시그니스)

발표 3. 나타샤 고베카 박사(선교학)

“기술은 하나의 도구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대변하며, 우리 미래의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부여하는 우리의 기대치입니다. 초연결이 아니라 그 연결로 우리에게 무엇이 전달되고 채우는지가 문제입니다. 세례받은 이로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그 깊은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고 친교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신과 같아질 수 있다는 헛된 약속을 쉽게 믿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친교 능력은 세례로 확대됐으며, 사람으로 ‘육신’을 취한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연약함과 헐벗음은 가려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온전히 연결되고 함께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천국이고 기쁨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은 기술 발전의 문제가 아니고, 영성체를 할 때마다 느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파울로 그라나타 박사. (사진 제공 = 시그니스)<br>
파울로 그라나타 박사. (사진 제공 = 시그니스)

발표 4. 파울로 그라나타 박사(미디어학)

커뮤니케이션은 친교이며, 인간의 본성입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미디어는 환경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 능력이 있으며, 미디어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삶의 환경입니다. 미디어가 메시지고 사용자가 그 내용(콘텐츠)이라면, 우리는 콘텐츠의 일부이며 그것을 바꾸고 참여할 책임이 있습니다.

미디어를 이용하는 이 시대 질병의 하나는 ‘맥락 없음’입니다. 콘텐츠를 둘러싼 맥락에 눈을 가리고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맥락이며, 맥락이 있어야만 콘텐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넘쳐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을 제공함으로써 콘텐츠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맥락 없음, 이것이 외로움과 단절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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