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 이야기는 역시 ‘마리아의 노래’, 즉 ‘마니피캇’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니피캇’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유대인들의 가부장제와 여성관을 망각해선 안 된다. 여성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가부장제는 유대 사회 전방위에 걸쳐 구약시대부터 예수 당대에 이르기까지 막강했다.

구약시대부터 유대 사회는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사회였다. 토라(모세오경)의 핵심을 보여 주는 십계명에서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언급은 ‘이웃의 소유물을 탐하지 말라’는 계명의 하위 개념이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결혼 후에는 남편이 여성의 소유권을 가졌다. 여성은 경제권이 없었기에 땅을 상속받을 수 없었고, 오로지 아버지나 남편이나 아들 등 남성에게 속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남편이 없는 과부와 아버지가 없는 고아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유대 사회에서 여성은 이혼할 권리도 없었고, 오로지 경제권을 주도하던 남편만 이혼할 권리를 가졌다. 이혼이란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 문서를 전달하기만 하면 성사됐다.

종교 생활에서도 여성 차별과 혐오는 막강했다. 쉐마라든지 아침기도 혹은 식사기도 같은 엄숙한 종교적 의무는 남성의 몫이었고, 아이와 노예와 여성은 의무에서 제외됐다. "탈무드"는 ‘자신의 아내와 자녀에게 은혜의 말 혹은 축복 기도를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고 적고 있다. 유대인 남성들은 매일 바치는 기도문을 통해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바쳤는데, 첫째 자신이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 둘째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 셋째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예수 당대엔 여성 차별이 구약시대보다 더욱 심했다. 구약시대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토라(모세오경)를 가르치라고 명했지만, 신약시대 여성은 토라를 공부할 수 없었다. 1세기 랍비 엘리제는 ‘토라를 여자에게 맡기느니 불태워버리는 게 낫다. 딸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행위는 그녀에게 음탕한 것을 가르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여성은 공중 예배 정족수에도 제외됐고, 법정에서 증인이 될 수도 없었다. 예루살렘 대성전에서 여성을 위한 공간은 남성의 자리보다 다섯 계단 낮은 곳에 위치했으며. 여성은 성서를 크게 읽을 수도, 예배를 이끄는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남성은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거리에서 아내나 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제가 만연했던 유대 사회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여성 차별과 혐오에 저항했던 예수의 노력을 복음서 저자들이 공들여 보여 주고 있음을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나라는, 콜로새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언급한 것처럼, 유다인도 이방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는 세상이다. 타고난 성별과 신분에 따라 차별과 혐오를 살아가야 한다는 기존 세상을 뒤엎고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 세상이 예수와 초대 공동체가 보여 준 새로운 세상이었다.

'마니피캇',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를 밴 마리아가 만난 모습. (이미지 출처 = Flickr)
'마니피캇',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를 밴 마리아가 만난 모습. (이미지 출처 = Flickr)

마리아의 노래가 등장하는 루카 복음서는 이전에 쓰인 마르코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보다 여성의 비중과 역할을 한층 강화했다. 시작부터 남성보다 여성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해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리야와 대조적으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어떻게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연대하는지를 자세하게 서술한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이름을 정하는 이도 모두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예수 탄생을 예고하려고 천사가 찾아왔을 때, 천사를 대하는 마리아의 태도를 ‘순종’으로만 읽었다면 서푼짜리 독해력이다. 마리아는 ‘주체적인 결정’과 ‘용감한 순종’의 모습을 보여 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마리아의 대답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상황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기존 세상 체제 너머 알 수 없는 저곳으로 가 보겠다는, 결단의 대답이었다.

예수 탄생의 서막은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루카 복음서는 메시아의 세상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메시아의 체제 전복은, 여성이며 청소녀였고 미혼모였던, 마리아의 노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마리아의 노래’는 가부장제 중심의 세상 질서가 종식되고 하느님 사업에 여성이 함께 한다는 놀라운 선언이기도 했다. 루카 복음서를 포함한 모든 복음서는 마리아의 품에서 성장한 예수가 당시에 만연했던 여성 차별과 혐오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선포했음을 수많은 예시를 통해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다.

마리아는 경계를 넘어 금기에 도전하는 여성이었다. 천주교가 자랑으로 여기는 성모님을 향한 신심은, 곧 성모님이 지녔던 신심을 본받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유형선(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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