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갈등의 시작은 민간인 학살”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단체 ‘미주진실화해평화’가 한국을 찾아 22일 종교인들과 간담회를 했다.

장기풍 씨(미주진실화해평화 위원)는 “한국 역사에서 민간인 최대 130만 명이 죄 없이 경찰, 군인 등에 의해 학살당했다. 진실을 밝혀 화해를 이루고, 평화를 얻자는 취지의 모임을 만들고, 3년 전부터 유족들을 만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주진실화해평화’는 미국에서 2019년 출범했으며, 뉴욕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강연을 여는 등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김영배 씨, 신대식 목사, 장기풍 씨 등 미주진실화해평화 위원들과 신한열 수사(떼제공동체), 이미일 목사(감리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1기 조사관이었던 최태육 목사 등은 이날 민간인 학살 문제가 잘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종교계 등 시민사회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기풍 씨는 40년 지기 친구가 울면서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6.25 당시 5살이던 친구의 가족 11명이 경찰에 학살당했어요. 인민군이 와서 총 들고 밥을 달라니 안 해 줄 수 없어서 밥을 해 줬어요. 9.28서울 수복 뒤에 피난 갔던 관리들이 돌아와서 부역한 사람을 찾아내 끌고 갔어요. 완장 찬 동네 사람이 친구와 친구의 이종사촌 형을 심부름 시킨다는 명목으로 풀어 줘서 살아남았어요. 집에 가서 꼼짝 말고 이불을 뒤짚어쓰고 있으라고 했는데, 엄마 찾으러 몰래 나갔대요. 1살과 3살 동생이 있었는데, 갓난아기는 안 보이고 엄마가 세 살짜리 동생을 안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가더래요.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 뒤에 우탕탕탕 총소리가 났대요.”

장 씨는 “친구가 지금도 꿈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는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단체 ‘미주진실화해평화’가 한국을 찾아 22일 종교인들과 간담회를 했다. (왼쪽부터) 최태육 목사, 신한열 수사, 김영배 씨, 신대식 목사, 장기풍 씨, 이미일 목사. ⓒ배선영 기자
한국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단체 ‘미주진실화해평화’가 한국을 찾아 22일 종교인들과 간담회를 했다. (왼쪽부터) 최태육 목사, 신한열 수사, 김영배 씨, 신대식 목사, 장기풍 씨, 이미일 목사. ⓒ배선영 기자

최태육 목사는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려면 당시 국가권력, 기득권 세력이 어떤 정책과 정치와 경제논리로 학살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년간 민간인 학살에 관해 연구하면서 학살의 진실을 밝히려면 정치경제 이해관계가 아닌 ‘인권’에 기반하고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것을 느꼈다”며, “종교인이 나서서 사심 없이 풀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민간인 집단 희생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8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 학살의 문화에 대한 어느 목회자의 수기”를 낸 바 있다.

신한열 수사는 1946년 10월항쟁(대구십일사건)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면 “70년 전 고통이 현재형이다. 끝난 게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 일에 대해 모른다. 시민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기념할 때 유가족들의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의 심각한 양극화와 진영 논리의 뿌리가 1946년 민간인 학살에서 시작됐다”며, 이 문제를 밝히는 것이 우리 사회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구 10월 항쟁, 제주 4.3, 보도연맹 사건으로 이어진 과거사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그 뿌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대식 목사는 “교회 중심으로 성장한 서북청년단이 학살에 앞장섰다는 것에 기독교인으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수치를 느낀다. 자기 나라 국민, 경찰, 군인과 경찰에 위임받은 서북청년단 같은 조직이 법적 절차도 없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역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씨도 민간인 학살 문제를 규명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내재한 모든 갈등이 화해를 이뤄 나갈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