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동 성당 신자들의 시노달리타스 여정
책, '4차 산업혁명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교회'

지금 세계 주교시노드의 한 과정으로 교구별 시노드가 진행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세계 주교시노드 개막 연설에서 교회의 모든 여정과 활동에 구성원 모두의 실제적인 참된 참여가 있어야 하며, 서로 경청하는 것이 교회의 핵심인 친교와 사명이 추상적으로 남지 않게 하는 중요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에 최근 가톨릭교회는 시노달리타스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시노드는 교회의 각 단위와 개별 신자는 물론 사회 및 다른 교파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정해진 설문에 대한 구성원의 답변을 모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모든 이가 함께 걷는 여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여정은 “현재의 시노드 여정으로 활성화된 체험만이 아니라,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라는 용어를 알지 못하거나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이미 ‘함께 걷기’의 형태를 맛보고 있는 모든 체험”('예비 문서')이기도 하다.

각 교구가 자기 현실에 맞춰 다양하게 함께 걷기를 하는 가운데, 이번 시노드가 열리기 이전에 본당 공동체가 하나의 주제를 놓고 긴 시간 서로 대화하며 신앙인의 소명을 모색한 사례를 담은 책이 있어 소개한다.

'4차 산업혁명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교회'라는 작은 책자에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 앞에서 교회와 신앙인의 역할을 묻는 서울 대방동 성당 신자들의 고민을 담았다. 신자들은 기술 혁명이 가져온 가난과 소외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2018년 6월부터 2019년 4월까지 10개월간 이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실천방안을 세웠다.

'4차 산업혁명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교회', 주수욱, 이원재 엮음, 기쁜소식, 2019. (표지 제공 = 기쁜소식)<br>
'4차 산업혁명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교회', 주수욱, 이원재 엮음, 기쁜소식, 2019. (표지 제공 = 기쁜소식)

당시 주수욱 주임신부(원로사목 사제)가 사목평의회에 이 문제를 제안하면서 사목평의회 의원들 사이에서 먼저 토론이 시작됐다.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한 사목평의회는 본당 신자들과 이를 함께 논의하기 위해 전체 신자를 초대하는 포럼을 열었고, 신자 70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은 주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공감대 형성을 위한 소규모 토론으로 이어졌다.

사목평의회, 단체 대표자(시니어아카데미, 빈첸시오, 청년사목평의회, 초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 레지오, 청년사목평의회, 주일학교 교사, 주일학교 학생을 단위로 한 모임에서 7달 동안 모두 7번의 토론을 진행했고, 신자 87명이 참여했다.

각 모임의 신자들은 연령대와 관심 분야에 맞춰 시대 변화로 인한 우리 사회의 어려움은 무엇이고, 우리 사회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신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놓고 토론하며 의견을 모았다.

당시 토론 과정을 정리한 안익장 회장(대방동 성당 사목평의회)은 “1년 동안 토론의 여정은 대방동 성당 공동체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과정이었다”며, “이 여정이 다른 공동체에서도 이어져서, 사회 변화에도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라고 이 책에 썼다.

신자들은 토론의 결과로 사회가 담당해야 할 과제와 교회가 실천할 방안도 정리했다.

실천 과제는 세대별로 시도해 볼 만한 것들로 모두 20여 개에 이른다. 다문화에 대한 관심, 목욕 봉사, 구역 소공동체에 끼지 못한 이들을 위한 공동체 만들기, 교회 공간 공유, 학습 동아리, 세대 간 소통 공간 마련, 기술 소외계층에 대한 기술 사용 교육, 참된 휴머니즘과 인간 가치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이다.

책은 먼저 4차 산업혁명과 가난한 사람들을 신학적으로 살펴본 주수욱 신부의 글로 시작된다. 주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전통적 소명이 이 시대에도 변함없으며 기술혁명 시대에도 교회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선포하는 역할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디지털 기술혁명이 가져온 사회 문제를 짚은 백승호 교수(가톨릭대)의 글과 경제 성장의 결과물과 기술혁명이 가져온 새로운 기회들을 어떻게 모두가 골고루 누릴 것인가란 주제를 다룬 박정호 전문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의 글이 이어진다.

이 글들은 지식과 정보가 지배하는 시대에 변화된 고용 관계와 기업구조로 배달 대행, 대리운전, 가사도우미 등 플랫폼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 그리고 경제 성장과 기술혁명이 불러온 소외와 깊어진 불평등의 상황을 짚는다.

기술 발전으로 사람이 하던 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계산원이 맡던 결제 업무를 소비자가 직접 하는 키오스크 시스템. ⓒ김수나 기자

간접 고용이 늘면서 사용자인 기업의 책임은 빠져버린 채 노동권과 사회적 보호에서 배제돼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놓인 노동 계층을 위해서는 먼저 사회보험 개혁과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이 도입돼 누구나 자유 의지로 노동과 사회적 봉사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논의가 필요하다.

백 교수는 교회부터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장이 돼 보라고 제안한다. 또 고령층이 기술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릴 수 있도록 산업 개편도 필요하다고 박 연구원이 지적한다.

이어 신자들의 구체적인 토론 과정과 내용, 교회와 신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평신도 좌담과 4차 산업혁명에서 교회는 누구의 편이 돼야 하는가를 평신도로서 전망한 글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원재 씨(대방동 성당 사목평의회 사목분과 부분과장)는 토론 여정에 대해 “중요한 것은 신자들과 함께 생각하는 과정이라는 믿음으로 진행한 것”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도, 가난한 사람들도, 교회도, 토론만으로 그 모습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뿌리로부터 탄탄히 쌓아 올려진 생각이야말로 변화와 실천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썼다.

이현숙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시노드가 아니라도 공동 목표를 가지고 우리 시선을 밖으로 돌려 그것을 향해 협력하는 과정 자체가 자연스럽게 책임 분담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장이라 생각한다”면서 일독을 권했다.

이 수녀는 “대방동 성당 사례는 본당의 삶 안에서 그러한 장이 펼쳐질 수 있음을 보여 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노달리타스가 이뤄진 것 같다”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안주하고 자기 안에 머무는 본당이 아니라 선교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방동 성당 사례는 모범적이다. 누구나 시도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이에 대해 이 수녀는 “교회 쇄신과 살아 있는 신앙이 되기 위해 이런 작업이 꼭 필요하다. 꼭 거대 담론을 다뤄야 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삶의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으로 신자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공론장부터 만들다 보면 다뤄야 할 주제가 보이고 대화하는 법과 서로 존중하는 법도 배우며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지금 필요한 이들에게 무료로 나누고 있다. 책이 필요하거나 대방동 성당의 사례를 참고로 본당 공동체가 어떻게 공론장을 만들고 신자들 간 소통해 나갈지에 대한 자문을 원한다면 이현숙 수녀(leefmm@hanmail.net)에게 연락하면 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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