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하느님은 단순한 일상에서 조용히 섭리하신다.”

교종,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8일 성 베드로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의 단순함 속에서 조용히 섭리하신다는 것과 마리아의 겸손은 그녀로 하여금 온전히 하느님께로 돌이킬 수 있게 하는 내적 자유를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종은 이틀 전 끝난 키프로스와 그리스 사도적 순방을 설명하고 이주민들에 대한 기억과 무관심에 휩싸이지 말라고 초대했다. 가르침 내용.

마리아가 역사를 바꿀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은 곳은 나자렛에 있는 그녀 집입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성령의 역사로 여자가 잉태하여 예수 안에서 육신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젊은 나자렛 사람의 가정적인 친밀감에 들어가십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소식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행하시기 위해서는 큰 재물과 우리의 숭고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고 우리의 겸손한 시선이 그분께 열려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일상생활, 즉 가정과 직장에서, 일상적 환경에서 위대한 일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의 은혜는 역사의 위대한 사건보다는 우리 일상에서 베풀어지기를 좋아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내부자를 위한 유토피아나 평범한 삶과 양립할 수 없는 경건한 환상’이 아닌 성덕을 성찰하고 믿도록 해야 합니다.

마리아의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는 겸손한 반응이 하느님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께 은총을 청합니다. 하나는 복음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이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시오. 마리아의 겸손은 거룩함의 이상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를 불타오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스러운 카드나 작은 형상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겸손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우리가 만나는 곳으로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거룩함을 엮을 수 있는 좋은 옷감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절망의 순간이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성모님께 도움을 청한 사람은 한 번도 버림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마리아에게 의지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고 한 ‘은총이 가득한’이라는 말은 성모님께서는 원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하다’는 천사의 말에 몹시 놀랍니다. 이는 그녀를 크게 괴롭히는 인사였습니다. 마리아는 그녀의 내면을 스스로 작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은총이 가득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자렛 집 안에 기이하게 뻗어 있는 무엇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 마음은 어떻습니까?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 같아 고민에 빠집니다. 마리아는 이러한 특권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며, 아무런 공로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높임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서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고, 시선을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원죄 없으신 마리아는 자신을 위한 눈이 없습니다.

여기에 진정한 겸손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한 눈이 아니라 하느님과 다른 사람을 위한 눈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의 완전하심’은 천사에 의해 공개적으로가 아니라 가장 겸손하게 숨어서 ‘작은 나자렛의 집’ 안에서 선언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위대한 심장’이 있습니다. 이 겸손한 벽 안에서 하느님이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은혜는 위대한 역사적 사건보다는 우리 일상에서 역사하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마리아는 성스러운 그림과는 관련이 없는 거룩함의 이상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거룩함이란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느님과 우리가 만나는 이웃에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매일 일어나는 일을 겸손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한 번도 버림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도 낙심하지 말고 그녀의 도움을 청합시다!

 

“이주민들의 고통을 결코 외면할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후 이틀 전 끝난 키프로스와 그리스 사도적 순방 결과를 설명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기도로 동행한 모든 이와 두 나라 시민, 종교와 정부 당국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교종은 키프로스를 ‘지중해의 진귀한 아름다움의 진주’라고 묘사했지만 그럼에도 ‘철조망의 상처와 국토를 가르는 벽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교종은 특히 키프로스 정교회 수장 크리소스토모스 2세와 만남을 언급하면서 가족의 일원처럼 느꼈으며,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그리스도 교회의 ​​자녀라고 말했다. 특히 교종은 키프로스가 ‘형제애의 실험실’이 되기를 다시 한번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주민의 곤경에 대해 ‘침묵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우리의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과 얼굴을 계속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그리스에서 받은 ‘형제적 환영’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아테네에서 저는 인본주의, 민주주의, 지혜, 신앙과 같은 유럽의 기억 속에서 역사의 위대함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교종은 지난 주일미사에서 그리스 가톨릭 주교와 공동체 신자들을 만나면서 ‘전체의 신비’에 대해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교종은 그리스 정교회 수장 이에로니모스 2세와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형제애를 마음에 품고 있고 순례길에 주님께서 흩어 놓으신 만남의 씨앗과 희망을 천주의 거룩하신 어머니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종은 가톨릭과 정교회 사이 ‘신뢰가 계속 싹트고 번성할 수 있도록’ 신자들의 지속적인 기도를 당부했다. 끝으로 교종은 교회의 수호성인 성 요셉의 해가 끝난 것과 금요일 로레토 희년이 끝나는 것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행사의 은혜가 우리 지역사회의 삶에 계속 작용하기를 바랍니다”라며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이 우리를 거룩함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했다.

 

“성모님께 전 세계 병자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

교종,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스페인 광장과 대성당 방문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맞아 이날 새벽 6시15분 어두움이 걷히기 전 로마시내 스페인광장을 찾아 성모 마리아 동상 앞에 장미꽃 화환을 봉헌하고 세상의 병자들과 전쟁과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치유를 간구하며 ‘사적 공경’과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봉헌했다. 교종은 곧이어 로마시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찾아 ‘로마 백성의 구원’ 성모상 앞에서 기도한 후 오전 7시를 지나 바티칸에 귀환했다. 바티칸 공보실은 스페인광장에서 열리는 전통적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신심행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방역에 따라 교종의 ‘사적 신심’ 기도로 대치했다고 밝혔다.

 

“‘아버지의 마음‘ 성 요셉의 해’ 마무리”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난해 12월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발표한 ‘아버지의 마음’(Patris corde) ‘성 요셉의 해’가 마무리되었다. 교종은 지난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기해 ‘인간의 조건에 항상 가깝지만 그림자 속에 있는 사람’인 예수님 양부 성 요셉의 아버지로서의 ‘비범한 인물’을 우리 각자 마음속에 재발견하기 위해 보편교회 수호자에게 헌정한 사도서한으로 '성 요셉의 해'로 선포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는 비오 9세 교종이 1870년12월8일 칙령으로 성 요셉을 '보편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한 150주년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한 해 모든 신자에게 성 요셉의 본을 따라 매일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신앙생활을 강화하고 기도와 선행으로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전대사를 선포했으며, 최근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을 통해 성 요셉의 ‘눈에 띄지 않고, 매일 존재하는 사람, 은밀하고 숨겨진 사람, 중보기도자, 어려운 시기에 지원과 안내자이신’ 모범적인 신앙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신자들에게 겸손한 신앙의 아버지 성 요셉을 신앙의 본보기로 삼을 것을 촉구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12월1일 교리교육에서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이 그녀의 임신을 알았을 때 슬기롭게 처신한 것에 대해 "사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삶이 우리의 상상과 일치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요셉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는 이유입니다. 그는 ‘모든 위험과 함께 눈을 뜨고 마리아를 선택합니다"라며 그의 위대한 신앙을 설명한 바 있다.

 

“전염병의 대유행은 보살핌의 문화를 요구합니다.”

교종, 보건복지 서비스 제공 이탈리아 OSA 협동조합 인터뷰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7일 사회 및 보건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탈리아 사회근로협동조합 OSA와의 인터뷰에서 전염병 팬데믹 시대 어둠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이 단체가 제공하는 도움에 격려의 말을 전했다. 로마에 본부를 둔 OSA 협동조합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가정 및 기관 지원, 재활, 병원서비스 및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도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도 발행하고 있다. 잡지에 실릴 교종 말씀 내용.

부드러움은 친밀함을 나타낼 뿐 아니라 능력을 통해 사람들의 구체적 삶에 참여할 것을 요구합니다. 즉, ‘공유, 근접성, 보살핌과 사랑’으로 이해되는 친밀함입니다. 저는 우리가 전염병에서 경험한 커다란 시련이 우리 사이에 새로운 부드러움과 친밀함을 갈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생산성에 중점을 둔 사회의 ‘실존적 주변부의 주요 시민’들인 어린이와 노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의 삶은 종종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그러나 저는 어린이와 노인 사이의 세대 간의 만남이 이러한 취약성을 한데 모으고 통합하는 방법을 아는 문화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현재 ‘인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것으로 돌아갈 때 진정한 변화의 신호를 줄 것입니다. 더 이상 세대갈등이 없도록 노력하고,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사회는 새로운 삶의 질을 경험하게 됩니다.

OSA 협동조합은 집에 있는 사람들을 집과 같은 친밀함 속에서 돕습니다. 가정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시련에 맞서는 힘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의료시설이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질병과 고통을 경험할 때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OSA 운영자들이 수행한 작업을 높이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외롭고, 더 많이 느끼게 하는 삶의 어려운 시기를 더 인간적이며, 인간화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고통과 질병의 시기를 보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의 병원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의료서비스를 인도적 방식으로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 종사자를 위한 몇 가지 간단한 규칙을 제안합니다. 첫째 사람들의 눈을 보고 그들을 고려하십시오. 그들의 고통을 결코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들이 사는 고통,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도록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는 결코 폭력적이지 않고, 예측할 수 없으며, 기계적이지 않은 전문 서비스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데 도움이 되는 키레네 사람이 필요합니다. 골고타에서 고통과 죽음에 직면하신 그리스도를 상상하지 않고서도 그분들의 체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고통과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에게는 종종 위로의 말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더 큰 고통을 낳게 됨을 봅니다. 마지막 재판의 순간에는 ‘무고한 고통의 스캔들, 아이의 고통’.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더 고통을 받을수록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을 도와줄 키레네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많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거나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에도 항상 우리 삶 안에 자신을 현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더라도 부활은 이미 어둠 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도 빛이 숨겨져 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어두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결코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이, 또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희망이 없이 사는 것,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없이 사는 것 우리는 이러한 것보다 더 큰 빈곤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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