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교회는 통찰력 회복해 베들레헴에서 다시 시작해야”

교종, 11월17일, 수요 교리교육 성 요셉 주제로 시작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7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진행한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에서 갈라티아서에 이어 ‘우리 신앙의 모범이자 증인’인 예수님의 양부 성 요셉에 대한 일련의 새로운 묵상을 시작했다. 교종은 전례 없이 전 세계적 위기가 닥친 이 시기에 성 요셉은 우리에게 ‘지원, 위안, 인도’를 제공할 수 있으며, 성 요셉의 해가 끝나갈 무렵 그분에 대한 묵상이 그의 모범과 증언으로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올해는 성 요셉이 ‘교회 수호자’로 선포된 지 150년 되는 해로 성 요셉에게 헌정된 특별한 해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자라게 하소서”를 뜻합니다. 이 이름은 즉, '소원, 믿음에 근거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특히 다산과 자녀양육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자렛 요셉 성품의 본질적 측면을 나타냅니다. 그는 하느님과 섭리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특히 성 요셉과 관련된 장소 베들레헴과 나자렛은 성인에 대한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입니다. 베들레헴은 ‘빵의 집’ 또는 아랍어로 ‘고기의 집’을 의미하며, 두 표현 모두 강생과 성찬례에 비추어 의미가 충만한 표현입니다. 베들레헴 또한 요셉이 그의 가계를 추적하는 다윗 왕 증조모 룻의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미가의 예언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야훼께서 사랑하시는 도성, 거룩한 도성'이었던 반면 베들레헴과 나자렛은 둘 다 주변부 마을로 소란스러운 소식과 시대의 권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성 요셉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베들레헴과 나자렛을 선택하신 것은 주변부를 선택하신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나자렛의 요셉은 야곱과 라헬의 아들인 '이집트의 요셉'과 많이 닮았습니다. 이집트의 요셉은 노예에서 파라오 다음으로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 요셉도 구원사의 두 번째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복음과 하느님의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변부에서 태어나 요셉과 같이 목수로 일하면서 최대 30년 동안 주변부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주변부와 소외된 자들을 선호하십니다. 특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 즉 죄인뿐 아니라 ’악을 행하지 않고 고난을 받은 자, 병든 자, 굶주린 자, 가난한 자, 가장 작은 자‘를 찾으러 나가십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교회도 사회 ’중심과 주변부‘에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주변부에 좋은 소식을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압니다. 이 점에서 성 요셉은 교회의 모범이 될 수 있으며,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버린 것‘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도록 상기시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 요셉은 ’진정한 것‘의 주인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평가할 수 있는 끈기 있는 분별력이 필요함을 상기시킵니다. 교회는 통찰력을 회복해 베들레헴과 나사렛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 요셉에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리적 또는 실존적 변방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 요셉에게서 당신이 바라볼 수 있는 증인과 보호자를 찾기를 바랍니다.

 

성 요셉에게 드리는 기도

항상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섭리에 따라 선택하시는 성 요셉이시여, 우리가 자신의 계획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그분 사랑의 계획에 의존하라고 가르쳐 주십시오. 주변부에서 오신 성 요셉이여, 우리가 시선을 전환하고 세상이 버리고 주변에 두는 것을 선호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외롭다고 느끼는 이들을 위로하고,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지지합니다. 아멘.

 

“정의와 평화는 정치적, 경제적 모순을 극복해야 합니다.”

교종, 각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화상회의 메시지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7일,18일 양일 간 바티칸 온전한 인간개발촉진위원회가 주최한 각국 주교회의의 정의평화위원회 온라인 회의에 보낸 메시지에서 코로나 팬데믹 후 인류가 직면한 도전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하고 격려했다. 메시지 내용.

성 바오로 6세 교종께서는 1967년 바티칸 정의평화위원회를 설립하고 온전한 인간발전을 촉진하는 사명을 ‘평화의 새 이름’으로 위임한 후, 각국 주교회의는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기 위해 지역 정의평화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위원회는 2017년 통합적 인간개발촉진 부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사회적, 생태적 정의와 평화를 위한 활동은 교회 사회사목 활동에 ‘필수적 봉사’입니다. 각국 정의평화위원회는 교회 사회교리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과 가장 버림받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보호를 위해 구체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 위원회는 평화를 뿌리면서 사회, 경제, 생태적 정의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환경과 형제애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요구되고 있습니다. 각국 정의평화위원회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모든 형제들’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복음을 토착화하는데 힘써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세계 모든 지역의 통합발전과 정의와 평화는 공동의 집을 보살피는 것과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이라는 두 가지 길을 통해서만 건설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경로는 그리스도 복음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고백과 다른 종교 신자들과 함께 추구할 수 있습니다. 지역 정의평화위원회 위원들은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한 어려운 상황에서 ‘희망과 결단력과 창의성’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많은 국가가 ‘지난 세기의 비극’을 피하기 위한 약속을 철회함에 따라 팬데믹이 많은 갈등을 얼마나 악화시켰는지 모릅니다. 현재의 위기는 경제 및 정치 시스템의 수많은 모순을 강조하고 있으며, 해결되지 않은 많은 과제들에 대한 공동헌신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많은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른 시민과 종교단체와의 협력은 필수적입니다. 여러분의 활동에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평화의 장인이 되고 팔복의 증인이 되십시오.”

교종, 재속 프란치스코회 총회에서 친밀감, 연민, 부드러움 촉구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5일 로마 재속 프란치스코회 총회에 참석해 연설을 통해 재속회원들은 각자 스스로 자신의 소명과 사명에 적합한 몇 가지 요소를 되새기면서 정의를 위해 싸우고, 완전한 생태계를 위해 일하며, 선교사업에 협력하고, 평화의 장인이 되며, 팔복의 증인이 되라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여러분의 소명은 성덕에 대한 보편적 소명에서 비롯됩니다. 거룩함은 '유일하게 거룩하신 분에 의해 이끌리고 정복되고, 변화되는 마음의 회심을 포함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을 진정한 '참회자'로 만드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스승이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신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회개의 길,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위해 '고행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사명을 수행하는 동안 성취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고행'과 '고행행위' 자체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단식과 자선, 고행 등은 하느님께 마음을 열기로 한 결정의 결과입니다. 재속회원들은 프란치스코회 은사에 따라 세상에서 살기 위해 헌신한 남녀들입니다.

여러분은 부디 예수님을 껴안은 것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십시오. 복음, 즉 예수님 자신이 당신의 삶을 형성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무엇보다 구별되는 표시인 가난, 작음, 단순함을 당신의 삶으로 취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일부입니다. 프란치스코회와 여러분의 세속적 정체성을 가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독신자이든 기혼자든 평신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사제와 주교는 각자 고유한 소명에 따라 겉치레 없이 단순한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며 성 프란치스코와 여러분 수도회의 많은 남성과 여성처럼 항상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만족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날의 실존적 주변부로 나가 복음의 말씀이 울려 퍼지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프란치스코 재속회의 삶을 따른다면 세속생활은 친밀함, 연민, 부드러움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희망을 가진 남녀가 되어 세속생활을 '생활'할 뿐 아니라 '조직화'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을 일상의 구체적 상황인 인간관계와 사회적 정치적 헌신으로 받아들일 때 오늘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키우게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여러분 모두 한 가족이 되기를 염원하십니다. 여러분 가족의 다양한 구성 요소와 구성원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은 항상 중요한 상호친교 안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라고 느끼는 세상을 함께 꿈꾸고 건설하기 위해 함께 일하며 정의를 위해 싸우고 온전한 생태학, 선교 프로젝트에 협력, 평화의 장인이 되고 팔복의 증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종,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 접견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5일 바티칸을 방문한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을 접견하고 기존의 우호적 양국 관계에 감사를 표하고 협력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와 함께 두 사람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있는 크로아티아인의 상황을 포함하여 여러 국제사회와 지역 문제 등을 논의했다.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교종과의 면담 후 바티칸 국무장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국가관계 장관 폴 리처드 갤러거 대주교와 따로 회담했다. 이날 교종은 크로아티아 대통령에게 포도수확을 묘사한 모자이크를 선물했다.

 

“많은 난민들에서 미래를 향한 얼굴을 대면합니다.”

교종, 예수회 아스탈리 센터의 이주자와 난민 사진전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16일 로마에서 예수회가 운영하는 난민을 위한 아스탈리 센터(Astalli Center)가 설립 40주년을 맞아 개최한 이곳을 거쳐 간 수천 명의 이민자와 난민,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고향에서 쫓겨난 수백만 명을 회상하고 추모하는 ‘미래를 향한 얼굴을 향하여’라는 주제의 사진전시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모든 사람이 우리의 풍부한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재발견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전시회는 로마 시내 퀴리날 언덕에 있는 성 안드레아 성당에서 28일까지 열린다. 메시지 내용.

‘미래를 향한 얼굴’이라는 전시회 제목은 동사로는 ‘향하여’ 또는 ‘대면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는 얼굴(Faces)에 대한 이탈리아어 명사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방황한 40년을 의미합니다. 노예에서 해방되어 많은 어려움을 딛고 한 민족으로 재건하는 데 한 세대가 걸린 것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지난 40년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이곳 아스탈리 센터를 거쳐 간 수많은 난민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박탈당하고 물건처럼 취급된다는 사상에서 출발한 노예제도와 유사한 조건에서 많은 사람은 강제로 탈출해야 했습니다. 많은 난민들은 전쟁의 참혹한 대가와 토지가 흙먼지로 변하고 물이 마르는 것을 보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피해 길을 떠난 많은 난민은 진정한 자유를 찾지 못하고 다시 한번 무관심으로 얼룩진 '인류의 사막'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많은 국가가 이주민을 막기 위해 장벽을 세우면서 갈등이 증폭되었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40년, 이 사막에서는 ‘더 넓은 우리를 향해' 새로운 사람으로 함께 걸어가는 꿈을 꾸게 하는 희망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곳 아스탈리 센터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과 그들을 돕기 위해 자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희망의 얼굴이며, 진정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얼굴입니다. 자유 속에서 공동체를 재발견할 줄 아는 연대감이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국민으로 함께 살고, 통일될 수 있으며, 획일적이지 않은 국민으로 살고, 다양성이 풍부한 많은 문화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바라보고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약속의 땅, 서로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연대의 땅에서 살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공동의 집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번 아스탈리 센터 사진전은 분단 위에 다리를 놓는 만남의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전시를 구성하는 다른 남녀들의 얼굴은 우리가 살고 삶을 나누는 도시에서 활동하고 싶은 열망과 많은 사람과 연대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주인공들을 보여 줍니다.

 

“에이즈 환자를 돕는 평신도와 종교인들에 감사”

프란치스코 교종은 1980년대와 90년대 ‘후천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 HIV/AIDS) 전염병이 절정에 달했을 때 교회의 일부 평신도 대표자들이 이룩한 업적에 대해 미국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오로린에게 서한을 보내 직업과 명성을 추락시킬 위험을 무릅쓴 많은 사람이 보여준 ‘자비’의 행위를 칭찬했다. 서한 내용.

1980년대와 90년대, 당시는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거의 100퍼센트 치사율을 보였던 ‘후천면역결핍증후군’ 환자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운 많은 사제, 수녀, 평신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당시 여러분의 직업과 명성에 대한 위험과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에이즈로 고통받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한 형제자매들과 동행하고 지원하기로 선택한 많은 사제, 여성 수도자, 평신도들이 삶의 증거를 밝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들은 무관심, 소외, 정죄가 아니라 아버지 자비에 감동되어 그것이 그들 자신의 삶의 일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영적 지원을 포함한 에이즈 환자를 돌보고 지원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 사명의 일부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초 과학자들이 이 새롭고 치명적인 질병 초기 단계에서는 무증상이고 전염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테러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결과적으로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찍혔습니다.

에이즈가 만연한 뉴욕에서는 환자들을 병원에서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거부는 가장 많은 사례가 발견된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질병 자체가 처음에는 동성애 관련 면역결핍증후군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오랫동안 동성애자들은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교회에서 축출되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훗날 동성애가 아닌 환자, 마약중독자, 혈우병 환자가 등장했을 때까지 수년간 유지되었지만 훗날 과학은 에이즈와 동성애 연관성을 부인했습니다. 병명도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러한 거부와 두려움의 환경에서 테레사 수녀가 개입했습니다. 1985년 크리스마스에 자선선교회 설립자인 테레사 수녀는 수년 전 캘커타에서 인도의 ‘불가촉천민’인 나병환자들을 모은 것과 같은 정신으로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테렌스 쿡(Terence Cooke)과 에이즈 환자를 수용하고 치료하는 ‘사랑의 선물’(Gift of Love)을 설립했습니다. 몇 년 후, 성녀 데레사는 초기의 봉사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작은 성당을 마련했는데, 이는 예수님을 가까이 한 적이 없거나 그분에게서 멀어진 젊은이들이 원하면 다시 그분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은 차츰 하느님 덕분으로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는 말기 증상으로 병원을 옮겨야 했던 한 젊은이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의 머리와 등과 팔다리 통증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채찍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에 집에 머물면서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데레사 수녀의 경험은 가장 유명한 사례일 것입니다. 그러나 데레사 수녀 이전에도 많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미국에서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에이즈는 1982년에서 1996년 사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자선사업과 함께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특히 간호사 캐롤 발토시에비치 수녀가 이 분야에서 처음 활동하면서 그녀의 활동을 비판한 사람들과 충돌한 이야기는 마이클 오로린의 책에서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항상 같은 주제를 다루는 팟캐스트 저자이기도 한 오로린은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기 위해 저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저는 그 책 서문에 “너희는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6)고 마태오 복음을 인용해 칭찬했습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 2008년 성목요일 세족례에서 에이즈 환자 12명의 발을 씻겨 주었다. 최근에는 2019년1월 세계 청소년의 날을 맞아 파나마를 방문했을 때, 에이즈 양성환자들을 환영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집’을 방문해 “여러분의 모든 집과 마찬가지로 이웃도 무엇보다도 사람이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이며, 상황이 어떻든 극복하거나 무시할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십시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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