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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도러시데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지금여기> 주보

도러시 데이

도러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는 미국의 가톨릭 평화주의자이며, 작가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피터 모린과 더불어 <가톨릭일꾼>(Catholic worker)을 시작했다. 도러시 데이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일꾼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적 전통을 계승해 '환대의 집'을 미국 전역에 세웠으며, 많은 그리스도인이 영적 캠프인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 머무시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사회적 복음을 위해 투신하는 기회를 얻었다. 토머스 머튼 등이 참여했던 가톨릭일꾼에서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은 '신문'을 만드는 일이었다.

<가톨릭일꾼> 신문은 누구나 사 볼 수 있도록 푼돈으로 배포했다. 현재 <가톨릭일꾼>은 1년에 7회 발행하는데, 1년 구독료는 25센트(약 250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신문은 1933년 5월 1일 2500부가 뉴욕 유니언 광장에서 뿌려졌다. 그런데 2년도 안 되어 발행 부수가 15만 부로 껑충 뛰었다. 가톨릭 신앙의 눈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신문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속히 불어났다. 그 지역의 신학교와 교회에서도 수십 부를 주문했다. 열성 청년들이 길거리로 나가 신문을 팔았다.

독자들은 다른 종교, 정치 계통의 신문에서 볼 수 없는 특별히 가깝고 가정적인 느낌의 <가톨릭일꾼> 신문만이 갖고 있는 목소리를 발견하였다. 원칙이 있고 뉴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친구끼리 편지 교환하듯이 쓴 글이었다. 전국적 규모의 신문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특정한 동네 그리고 지역의 냄새와 소리와 작은 사건들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러시 데이는 1952년 4월 <가톨릭일꾼> 신문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비참함과 가난한 이들의 신음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만드는 세계 고통의 한 부분'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는 특별히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인의 '작은 길의 영성'을 소중하게 여겼는데, 데레사의 가르침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지닌 의미! 우리가 실행하지 못한 작은 것들의 의미! 우리가 하지 못한 항의들,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기준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작은 행동의 의미에 대하여 숙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생명을 선호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인간의 형제애를 위하여 일하고자 한다. 소수인들, 소수의 사람들만이라도 불의에 저항하여 외칠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고통에 대항하여 굶주리고 집 없는 이들, 일이 없는 이들, 죽어가는 이들을 대신하여 외칠 수 있다고 믿는 '고집 센'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려고 노력한다'고 하면서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대신하여 '말해야 하고 써야 한다'고 전했다.

<가톨릭일꾼> 신문은 도러시의 부엌을 편집실 삼아 시작하였다. 자금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걱정할 때, 피터 모린은 이렇게 말했다.

"성인의 역사를 보면 자본은 기도를 통해서 얻어집니다. 하느님께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보내 주십니다. 인쇄비를 댈 수 있을 거예요. 성인들의 일생을 읽으면 알게 됩니다" 규정도 없고 재단도 이사회도 없이 오로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은총과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의존하여 신문을 발행한 것이다.

그러나 여지껏 단 한 번도 신문을 거른 적이 없다.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이 또한 기적이다. 우리로 하여금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세상의 따듯한 지지와 응답을 경험하게 만들어 주는 기적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지금여기>는 도러시 데이의 이러한 정신에 공감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 메시지와 교부들의 신앙, 그리고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서 세상과 의사소통을 감행하며,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복음을 놓치기 쉬운 교회가 각성하도록 돕는 교회 신문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언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줄기차게 보여 주는 언론, 언어가 아니라 태도에서 세상과 다른 언론, 누가 보아도 나자렛 예수의 다감한 눈빛을 읽을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언론 역시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위로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